남의 아이는 챙기면서, 내 아이는 못 챙기던 시절

워킹맘으로 일하던 시절, 저는 학원에서 다른 집 아이들의 공부를 살폈습니다. 제 아이들은 방과 후에 제가 일하던 학원으로 와서 수업을 들었지요. 곁에 두긴 했지만, 전업으로 집에 있는 엄마들처럼 학교 숙제를 하나하나 봐주거나, 준비물을 세세히 챙겨주는 일은 저에게 늘 벅찼습니다.

그때의 저는 자주 불안하고, 미안했습니다. ‘엄마 노릇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늘 한구석에 있었습니다. 남의 아이는 꼼꼼히 봐주면서 내 아이는 그러지 못한다는 사실이, 어떤 날은 유난히 무겁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아마 지금 이 글을 읽는 어떤 분들은, 이 마음이 무엇인지 바로 아실 겁니다.

아이들이 자라, 제 몫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렇게 마음 졸이던 시간이 지나고, 두 아이는 어느새 어른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각자 직장에서 제 밥벌이를 하며, 자기 삶을 성실히 꾸려가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하나입니다. ‘내가 다 채워주지 못했는데도, 이렇게 잘 자라주어 고맙다’는 것.

돌이켜보면, 다 챙겨주지 못했던 그 시간들이 저에게는 오히려 다행이었던 것도 같습니다. 제 몫의 일을 놓지 않았던 덕분에, 지금은 아이들의 오늘을 오롯이 ‘고마움’으로만 바라보게 되는 것 같아요. 이건 어디까지나 제 이야기일 뿐, 어떤 삶의 방식이 더 낫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저는, 제가 걸어온 길이 저와 아이들 사이에 지금의 편안한 거리를 만들어준 게 아닐까 생각하곤 합니다.

아이는 반찬보다 ‘태도’를 보고 자라는지도 모릅니다

전업으로 곁을 지키지 못한다는 이유로 죄책감을 느끼는 워킹맘을 저는 참 많이 만났습니다. 그분들께 제가 조심스레 건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보면서’ 배운다는 것입니다.

오늘 반찬이 무엇이었는지, 준비물을 누가 챙겨줬는지 같은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자기 자리에서 성실히 하루를 살아내는 엄마의 뒷모습은 오래 기억합니다. 저는 제 아이들이 저에게서 세세한 보살핌 대신, 어쩌면 ‘삶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을 조금은 배우지 않았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짐작해봅니다. 물론 이것도 제 바람이 섞인 생각일 테지만요.

미안한 마음, 그 자체가 사랑입니다

다 해주지 못해 미안한 그 마음은, 사실 아이를 그만큼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니 워킹맘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너무 몰아세우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완벽하게 곁을 지키는 것만이 좋은 엄마의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것만으로도 아이에게 전해지는 것이 분명 있다고, 저는 제 아이들을 보며 믿게 되었습니다.